뮤지컬 <스팸 어랏> 이토록 유쾌한 아더 왕과 친구들

'다가닥 다가닥' 백마 탄 기사가 등장하나 했더니 주먹을 다소곳이 움켜쥐고 두발로 달려오는 왕이 보인다. 그 뒤를 잇는 시종은 코코넛 열매 껍질로 경쾌하게 박자를 맞춘다. 이 황당한 등장에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똥, 내장이 난무하는 중세 유럽의 무대는 바로 아더 왕 이야기 속. 말은 없으되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기사들의 이야기는 곧 관심법으로 봐야하는 이상한 모험담이 된다. 뮤지컬 <스팸 어랏>은 1969년 등장과 함께 영국을 달궜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 <몬티 파이톤의 성배>를 그대로 브로드웨이로 옮긴 코미디 뮤지컬이다. 언어유희, 패러디, 온갖 풍자가 난무하는 난장판은 성배를 찾아 떠나다 산으로 가는 아더 왕과 바보같은 원탁의 기사들을 따라간다.

영미권에서는 어린 아이도 다 아는 카멜롯의 전설이지만 한국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이 점을 감안해 뮤지컬은 공연되는 현지 정치와 문화에 맞게 이야기를 바꿔치기한다. 유럽 뮤지컬과 달리 변주를 허용하지 않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코미디는 이 순간의 공기를 잡아내야 한다는 법칙을 감안한 것. ‘진짜’ 아더 왕의 카멜롯 전설은 원탁의 기사단과 함께 성배를 찾아 떠나는 성스러운 모험담이다. 뮤지컬에서는 의로운 왕 대신 지성은 집에 두고 온 아더 왕과 오합지졸 기사단의 산으로 가는 여정이 되었다. 전설의 성지 카멜롯을 스팸이 많아 ‘스팸어랏(Spam a lot)’으로 만들어버리는 말장난은 시작에 불과하다. 용맹하고도 로맨틱한 원탁의 기사 랜슬럿 경은 커밍 아웃시키고, 패배를 모르는 불멸의 흑기사는 포기를 모르는 ‘찌질한’ 놈으로 만들어버린다. 영웅담에 느닷없이 스팸을 끼워넣어 대형 PPL 공연으로 둔갑시키는 변화무쌍함은 뮤지컬 전체를 관통하는 웃음 기법이다. 성배를 찾는 여행은 말끝마다 '니'를 외치는 정체불명의 정령들을 만나 스팸을 찾다가 결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작하는 여정으로 변질된다. 점점 산으로 가는 이야기에는 매 순간 코미디를 배치했다. 그 중 <오페라의 유명>, <지킬 앤 하이드>, <위키드>, <헤드윅>, <헤어스프레이>, <시카고> 등 온갖 뮤지컬 주인공들이 코러스로 총출동하는 장면은 뮤지컬의 백미. 갈등의 골이 깊은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를 한·중·미와 북한의 정세로 탈바꿈시켜버리는 장면과 연예인을 쫓는 한국 공연계까지 조롱하는 데서는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패러디의 진수답게 뮤지컬은 아는 만큼 보인다. 원탁의 기사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라만차의 기사를 따라나서려는 영원한 산초 이훈진에 이어 유일한 히로인 이영미는 주연에서 밀려나는 설움에 겨워 '옥주현'을 부르짖는다.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이 황당한 웃음 포인트는 정확하게 명중한다. 뮤지컬과 친숙하지 않다 해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황당무계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영리한 이야기와 말장난 끝에 '인생 뭐 있나요. 웃어 봐요'라는 소소한 철학이 기다린다. 누가 더 바보 같은지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가져갈 단 하나의 메시지다. _guest editor_양현주 공연월간 씬플레이빌 6월호

뮤지컬 <스팸 어랏>
공연기간: 2013.5.16-9.1
공연시간: 화-금 20:00 토 15:00 19:00 일·공휴일 14:00 18:00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작사'곡: 에릭 아이들
작    곡: 존 뒤프레
연    출: 데이비드 스완
배    우: 서영주 정준하 이영임 신의정 정상훈 조형균 윤영석 고은성 이훈진 김호 정철호 공민섭 박경동 윤민우 정성진
제    작: ㈜오디뮤지컬컴퍼니 (주)CJ E&M
티켓가격: R석 8만8천원 S석 6만6천원
문의예매: 1588.5212

INFORMATION
<스팸어랏>은 영국에서 '코미디계의 비틀즈'로 통하는 '몬티 파이톤' 멤버가 2005년 직접 제작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토니상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최우수 뮤지컬상과 연출상, 여우조연상을 움켜쥔 공연이지만 2010년 한국 초연에서는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1000석 규모의 한전아트센터에서 접근성이 좋은 두산아트센터로 옮긴 이번 시즌 공연은 600석 규모의 중극장 무대에 맞게 동선을 짜고 현지화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도 다루는 국내외 정세를 원조 격인 뮤지컬에서 변화무쌍하게 패러디한다. 배우들의 절묘한 호흡 중에서도 지난 시즌에 이어 랜슬럿 경부터 '무수와(무서워) 루이비똥싸것수아' 이상한 욕설을 퍼붓는 프랑스 군, 위대한 마법사 미미, 니의 정령으로 동분서주하는 정상훈의 코미디 감각은 빛난다. 겁쟁이 로빈 경과 옥탑방에 갇혀 기사님을 기다리는 연약한 게이 왕자를 연기한 조형균도 인상 깊다. <스팸어랏>을 빼놓고 패러디를 논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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