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욕망을 먹고 살아간다.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존재, 욕망은 그렇게 인간을 전진하게 한다. 움켜쥘 수 없는 욕망이 생존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인생 뭐 있나 전세 아니면 월세’라는 '웃픈' 문장에 파르르 떠는 서민의 삶은 반백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나보다. 연극 <만선>의 갯비린내 물씬 풍기는 어촌에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인간상이 가득하다. 60년대 서해안의 작은 섬, 그곳에도 계급과 대물림 되는 가난이 존재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고기잡이로 하루를 연명하고 모두가 만선을 꿈꾸며 거친 바다로 향한다. 빈 그물에 빚만 늘어가지만 마치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으로 만선의 꿈을 버리지 못 한다. 어부 곰치 또한 번번이 죽어나가는 아들들을 아랑곳 않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어부로 만든다. 모처럼 자연이 선물한 만선이 행복을 약속하지만 선주는 밀린 빚 갈이라며 잡은 고기를 몽땅 빼앗는다. 욕망의 실체를 한번 맛본 인간은 멈추지 못 하는 법. 곰치는 딸을 저당 잡아 찾아온 배에 아들을 태워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난파된 배의 파편과 곰치뿐이다.
극작가 천승세가 쓴 <만선>은 가난한 어부 곰치 일가가 산산 조각나는 과정으로 밑바닥 인생의 삶을 해부한다. 생존을 위한 욕망이 도리어 가족을 파괴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딜레마가 비장하게 그려진다.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김종석 연출의 21세기 <만선>은 60년대라는 시대성과 목포라는 지역성에 함몰되지 않고, 이 시대에도 유효한 어촌 마을로 관객을 인도한다. 재현보다 진화에 초점을 맞춰 주름진 어촌을 보편적인 인간세상으로 상징화한 것. 당시 어촌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근대 리얼리즘 연극이라는 호평을 받은 원작에서 시대성을 걷어내면서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더했다. 곰치로 상징되는 인간 욕망과 집착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은 시대를 아우른다. 마치 헤밍웨이의 그 노인처럼 마지막 남은 행운을 모두 그러모아 결국 파멸에 이르는 곰치의 집착이 보편적인 힘을 갖는 이유다.
곰치가 꿈꾸는 만선은 인간의 도착적 욕망을 묘사한다. 실패를 거듭하고도 끝내 도전하고 마는 인간의 집념 앞에 자연은 쉼 없이 파도만 오갈 뿐이다. 소금기 어린 거친 바람이 없을 뿐이지 우리의 생존도 내일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조금 더 넓은 아파트, 안정적인 정년으로 치환되는 꿈의 높이는 만선과 다르지 않다. 빈곤과 계급이라는 문제의식은 시대를 초월하는 파도가 되어 가슴으로 밀려든다. 만선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된 욕망과 생존의 딜레마에서 발버둥치는 곰치의 얼굴은 낯설지 않다. 연극은 그렇게 이 시대 수많은 욕망하는 사람들을 곰치로 치환한다. _공연월간 씬플레이빌 5월호
연극 <만선>
공연기간: 2013.5.3-2013.5.15
공연시간: 화-금 19:30 토 15:00 19:00 ·일 15:00(8일 15:00 추가공연)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 본: 천승세
연 출: 김종석
출 연: 한명구 김재건 이기봉 황영희 최규하 최지훈 임형택 이진희 이유정 서광일 심원석 이효상
제 작: 예술의전당
티 켓: 지정석 3만5천원 비지정석 2만원(평일 낮 공연 전석 2만원)
문 의: 02.580.1300(예술의전당)
INFORMATION
연극 <만선>은 1964년 국립극장 현상문예 희곡 당선 작품으로 명동 국립극장에서 최현민 연출로 초연했다. 연극에 깊은 인상을 받은 김수용 감독이 67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해 당시로서는 놀라운 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인공 곰치로 주름 깊은 어민의 애환을 포착한 배우 김승호 외에도 남궁원, 남정임, 신영균 그리고 주증녀 등 관록 있는 배우와 스타 캐스팅이 화제를 모았다. 어촌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어민들의 노사분쟁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연유로 국외 수출은 물론 해외영화제 출품이 금지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필름은 현재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원작 연극을 무대로 만날 기회가 왔다. 이번 무대는 예술의전당의 개관 25주년을 축하하는 '페스티벌 25'의 첫 번째 공연.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규모 등의 이유로 무대화되지 못 하던 옛 희곡들 중 <만선>과 <혈맥>이 대중과 다시 만난다. 젊은 관객들로부터 잊혀져가는 근대 리얼리즘 연극의 맛을 느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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