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이자람.

지금 왜 브레히트인가

연극 문외한도 브레히트는 안다. 독일 극작가이자 서사극의 창시자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런 존재다. 이자람은 브레히트를 두 번이나 무대로 불러들였다. 지금 왜 우리는 브레히트를 소환하는가. _공연월간 씬플레이빌 12월호














뒤늦게 꽃피운 브레히트

모두가 알지만 잘은 모르는 브레히트, 그가 한국에서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열렬한 마르크스 주의자였던 그의 사상 탓에 대학교나 연구회를 중심으로 몰래 보고 읽었던 것. 단 한 번도 당원으로 입당한 적은 없지만 엄연한 공산주의자였던 탓에 국내에서는 88년까지 그의 연극이 금지됐다. 그에 대한 공연과 연구가 해금되면서 90년대 대학로는 브레히트를 향한 열렬한 예찬을 폈다. 타계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브레히트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비판적인 그의 기질은 한국에서 마당극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했다. 마당놀이가 품은 풍자와 해학 정신을 브레히트식 비판정신과 함께 놓은 것. 마당극이 유희라면 브레히트 연극은 이성적 학문에 가깝다.

브레히트 판소리로 재탄생

21세기로 와서 소강상태에 접어든 브레히트라는 카드를 이자람이 다시 꺼내들었다. 소리꾼답게 판소리로 브레히트를 다시 해체하고 연주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많은 것이 내재되어 있고 인간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금 이 상태로 머물러 있으란 법은 없다"라고 말한 브레히트라면 이자람의 <사천가>나 <억척가>를 보고 기뻐했으리라. 브레히트는 관객이 무대로부터 거리두기를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줬다면 이자람은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거두고 함께 울고 웃는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이자람 엿보기

소리꾼 이자람의 무대 인생을 두고 <서편제>와 <사천가>를 빼놓을 순 없는 법.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하면서 전방위 예술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줄곧 판소리의 현대화에 고심해왔다. <사천가>로 시작해 <서편제>로 외연을 넓히고 다시금 <억척가>로 돌아온 이자람의 행보를 쫓아간다.

<서편제> 이야기로 외연을 넓히다

창작뮤지컬 <서편제>는 故 이청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그 이전에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대중에게 친숙하다. 오정해의 얼굴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생이 녹아있는 유명 영화를 다시금 뮤지컬 무대에 재탄생시킨 결과 한은 한층 깊어지고 소리는 절절해졌다. 초연무대부터 함께 해온 이자람은 뮤지컬 <서편제> 무대에서 그대로 송화를 입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물 흐르듯 숨 쉬는 연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리꾼들의 유랑으로 공연계에 이자람 바람이 불어 닥쳤다. 뮤지컬 <서편제>는 한국영화의 진짜 르네상스 시기 매년 한두 편을 공장식으로 찍어내던 예술가 이전의 임권택을 기억하는 어머니 세대도, 주말의 명화로도 고리타분하다 생각하는 90년 세대에게도 통했다.

<사천가> 판소리로 내연을 확장하다

브레히트를 이자람식으로 해석한 첫 번째 창작 판소리.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사천가>의 무대는 대한민국 사천이라는 도시다. 이곳에 세 명의 신이 나타나 선인을 찾는다. 배경은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바꾸고, 주인공도 창녀에서 뚱녀로 옮겨왔다. 뚱뚱한 처녀 순덕이 말하는 착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란 부조리, 위악, 위선으로 가득하다. 바로 무대 바깥 우리들 세상이다. <사천가>는 2007년 정동에서 초연한 후 판소리만들기 '자‘의 주요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관객이 판소리는 어렵고 진부하다는 편견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도록 언어유희와 세태풍자에 심혈을 기울였다. 더불어 마임, 막간극, 타악을 결합해 보고 듣는 즐거움에 집중한다. 판소리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관객을 향한 애정 어린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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