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억척가> 핏빛 절규로 뽑아낸 가락

새삼 이자람을 두고 판소리의 대중화를 이룩한 인물이라 소개하려니 손이 부끄러워진다. 뭐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서편제>로 이자람은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을 낯선 국악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한층 대담해진 이자람은 <사천가>에 이어 <억척가>로 브레히트와 손을 잡았다. 전작보다 전통 판소리의 결을 살리면서 자신만의 놀이터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억척가>는 17세기 유럽의 30년 종교 전쟁을 배경으로 한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원작이다. 전쟁이라는 동서고금 극악한 공통분모를 놓고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 속 중국 삼국시대에 둥지를 튼다. 이야기는 김순종이라는 한 여인의 수난사다. 전남 촌구석의 처녀 김순종은 열여섯에 시집가 소박을 맞는다. 이유도 기막히게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들을 안고 연변으로 건너간 순종은 제갈 아귀를 만나 둘째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여인의 불운은 끝날 줄을 모른다. 폭력 남편을 피해 중국 한나라까지 넘어온 순종은 이번에야말로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이 놈이나 그 놈이나 마찬가지다. 열여섯 순종은 어느새 아들 둘에 딸 하나, 애만 덜렁 셋 낳은 어멈이 되었다. 이름대로 순종하며 살아온 여인은 지긋지긋한 팔자 좀 고쳐보겠다고 안나로 개명하지만 그녀 인생은 그저 억척어멈이다.

<억척가>는 한의 노래다. 한을 빼고 판소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억척가>가 내보내는 소리란 어머니의 지고지순 희생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예술적 성취를 논해야겠다. 어멈은 전쟁 통에 자식 셋을 먹여 살리려고 전쟁 위에 올라탄다. 달구지를 끌고 물건을 내다 파는 전쟁상인이 된 것이다. 태평성대에 살기에도 자식 셋은 버겁건만 어멈은 억척스러워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하면 무릇 어머니의 희생이 절창으로 뽑혀야 하겠지만 판소리는 한 개인에게 집중한다. 적군과 아들, 어멈이 대치한 상황에서 생명줄인 달구지를 놓지 못하고 아들의 목이 잘리는 기막힌 순간, <억척가>는 모성을 노래하는 그 이상을 성취한다. 한 손에 달랑 부채 하나를 들고 2시간 20분간 펼쳐지는 1인극은 웃음과 눈물의 마라톤이다. 이 길 위에서 이자람은 홀로 15개를 넘나드는 배역으로 20년 세월을 압축한다. 한 많은 여인의 넋두리는 구성지게 웃기고, 자식 셋을 잃은 여인의 절창은 피가 끓는다. 비극의 정점에서 토해내는 핏빛 절규가 한층 더 붉게 빛난다. _공연월간 씬플레이빌 12월호

판소리 <억척가>
기    간: 2012.12.29
시    간: 토 15:00 18:00
장    소: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원    작: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작창: 이자람
연    출: 남인우
무대감독: 김지명
출    연: 이자람
연    주:  이향하 김홍식 장혁조
티    켓: 1층석 30,000원 2층석 20,000원
문    의: 1577.7766

INFORMATION
<억척가>는 이자람이 2007년 초연한 <사천가>에 이어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두 번째 작품. 지난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개막작으로 초연된 후 지난 5월 LG아트센터 진행한 앵콜 공연은 두 달 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을 놓친 이들은 올해 <억척가>를 다시 만나는 건 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파리 민중극장과 루마니아 클루지 헝가리안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초청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억척가>가 다행히도 한국에서 다시 마무리 장단을 올린다. <억척가>에서 헤로인이자 히어로인 이자람은 무대 위에서 홀로 15 가지 이상의 배역을 소화하면서 50곡이 넘는 소리를 주워섬긴다. 인디밴드 '한음파'의 베이시스트 장혁조와 타악 연주자 김홍식, 이향하가 무대 한 켠에 자리 잡고 추임새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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