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ING ROLE> 나를 정의하지 않을 권리_양방언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퍽 낯이 익었다. 양방언, 21세기에 와서 지연, 학연, 동성(同姓)을 들먹이면 꽤나 고루해보이겠지만, 내심 반가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양방언이라는 이름 석 자가 아직도 낯설다면 이건 어떤가. 크로스오버 뮤지션, 재일 한국인, 영화음악 프로듀서, 의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음악의 길에 투신한 사람.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라도 그의 음악을 듣게 되면 귀가 먼저 그를 알아볼 것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공식 주제가였던 ‘Frontier’나 CF로 수없이 만난 ‘Mint Academy’ 같은 음악들에서 우리는 이미 양방언을 익숙히 들어왔다.

일본 땅에서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온 경계인, 조총련 학교에서 록음악을 듣다 반동분자로 찍혔던 문제아, 음악 때문에 가족과 단절된 채 살아온 가출청년. 제주도 출신 북한 국적의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인 남한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살아온 한국적 디아스포라. 양방언의 음악은 이 짧은 바이오그래피를 그대로 닮아 있다. 클래식, 재즈, 국악, 월드뮤직이 양방언이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 양방언이라는 음악으로 탄생하는 식이다. 실제로 만난 양방언은 유독 소통, 접점, 자극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다. 그리고 정의내리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 불려도 좋지만 자기 안에는 어떤 정의를 담아두지 않겠다는 무형의 정의다. 그는 그저 외부의 자극을 안으로 삼켜 무궁한 에너지로 피아노 위에 쏟아 부을 뿐이다. 그가 이번에는 우리음악으로 이 여름 한판 멋진 장단을 울릴 여우락(‘여’기 ‘우’리 음‘악(樂)’ 있다) 페스티벌의 한가운데에 선다. 여기 도전이라는 단어와 이음동의어로 통하는 양방언의 이야기가 있다.

한국 활동도 십년이 넘어섰고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 해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연주자로 참여한 데 이어 예술 감독으로 취임했다.
모든 게 신선하다. 연주자로서의 역할과 달리 다른 영역에서 음악을 통해서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무엇보다 연주를 할 때는 무대 위 뮤지션들과 소통하고, 감독으로서는 모든 뮤지션들과 함께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새롭다.

(한국이 아닌)바깥에 있을 때 우리 음악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우리 국악축제의 예술 감독을 맡았지만 나는 지금 외국에 살고 있다. 우리 음악이라는 건 곧 내 음악의 재발견이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 음악을 접했을 때 가슴 속에서 잃어버리면 안 되는 부분 같은 게 와 닿는다. 이건 음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감 같은 거다. 소중한 음악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 연주를 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본인만 좋은 게 아니라 극장에서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의 열의나 열정, 힘과 재능이 하나가 되어 결실을 만드는 거다.

참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을 하고, 영화 음악 프로듀서와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을 하고, 이렇게 공연 기획도 하고 말이다. 도전에 대한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어려워한다.(웃음) 역시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사실 힘들다. 어려워하지만 즐거운 거다. 다른 문을 열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또 다른 꼭대기에 올라가면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원래가 그런 성격이다. 많은 사람들과 음악을 통해 만나게 되면 그 반응이란 언제나 같지 않다. 당연히 다른 영역에 가서 그 영역에서 뭔가 해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고 새로운 영역에 갈 때마다 얻게 되는 무엇이 있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도움을 받는다.

당신의 작업 중 영화음악이나 애니메이션 음악 같은 경우에는 상업과 접목이 되기에 많은 사람과 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보통 음악가하면 방에서 혼자 고뇌하면서 작업하는 외골수적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양방언이 작업하는 스타일이 궁금하다.
나도 방에서 혼자 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나에게는 그런 인상이 없나. 방에서 힘들게 고생하는 이미지.

쉽게 쓸 것 같다.
오호.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럽다.(웃음) 당연히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아니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든다. 아니 힘들다기 보다는 작업실에 있을 때는 집중하면서 열심히 만든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기분을 전환시킨다. 새로운 공기로 숨을 쉬고 돌아가기 때문에 다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다.

음악을 해서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쉽게 쓴다기 보다는 그 순간순간에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음악을 만들 때의 역할이 있고, 예술 감독을 맡을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지 합의점을 찾아야 된다. 지칠 때도 당연히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안되겠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쉽게 작업을 한다는 인상인가보다. 사실 많이 고민을 하는 스타일이다. 고민하고 있을 때는 사람들과 접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기운을 갖고 있을 때 사람을 만난다. 아 이제 원인을 알았다. 그래서 그런 인상을 남기는 거군.(웃음)

보통 연주음악들은 휴식을 취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가라앉게 해주는 음악이다. 양방언의 음악은 바다나 평원이 떠오르고 자유롭고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사람을 일어나게 한다.
항상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소망이다. 내 음악이 듣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이런 페스티벌에 참여할 때도 출연진이나 관객들이 그런 (음악을 들었을 때와 같은) 감흥을 받는다면 아주 만족스러울 거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곡을 쓰고 연주를 하는 것보다 페스티벌 안으로 들어가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연주를 하면서 뮤지션들이 그런 기분을 갖는다면 관객들에게도 분명 전달될 거라고 생각한다.

연주음악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인터뷰들을 보니 보통 듣는 음악들은 욘시나 라디오헤드, 뮤즈 같은 요즘 음악들이더라.
물론 우리 세대가 옛날 음악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감수성이 풍부할 때 들었던 음악들이 편하니까. 하지만 그런 음악만을 얘기하는 건 재미없다. 지금의 음악을 나도 공유하고 싶고 어떤 부분에서 매력이 있는지 공감하고 싶다. 계속 얘기하듯 자극을 내가 잡을 수 있도록. 요즘은 젊은 작곡가들과 어울린다. 세대가 다르니까 함께 얘기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지식도 너무 풍부하고. 내 이십대 시절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그런 때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그 때의 나처럼) 어디로 가야하는가 고민하고 있다. 그럴 때 내가 몇 마디를 하면서 서로 소통을 할 수도 있고, 도리어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걸로 알고 있다. 대학교까지 꾸준히 공기처럼 피아노를 접해왔다. 어떤 동기부여로 시작하게 되었나.
누님이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나는 다섯 형제 중 막내였다. 누나와는 열두 살 차이가 난다. 시끄러웠다. 같은 말을 네 번 다섯 번 듣게 되니까.(웃음) 누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했고. 그 누님이 강제적으로 피아노를 시켰다. 난 싫었다.(웃음) 그 당시 남자아이라면 밖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 했지, 부끄러워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도 못 하고 숨어서 했다. 그런 누나가 지금은 약사가 되었다.

한 때 꿈 꿨던 일을 동생이 대신하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도 누나였다. 지금은 뭐라고 하는가.
제멋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웃음) 일단은 지금은 응원해준다. 그 당시 음악을 선택했을 때에는 가출을 했다. 인정을 못 받았으니까. 시간이 지나서 그 뒷모습을 돌아보니 응원을 해주고 있더라. 지금은 공연할 때 어머니와 가족들이 온다. 이제는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는 게 만족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다.

자랑일거다.
자랑? 잘 모르겠다. 내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한다.

언제나 그랬듯 지금 이십대 삼십대도 꿈을 꾸고 있고, 꿈을 꾸는 걸 철없다고 질타 받는다. 그들에게 꿈을 이룬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양방언 또한 그런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을 거다. 그 시절이 궁금하다.
의사를 그만둔 직후에는 경제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장 자유롭던 시기였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 때는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 시절이 나에게는 보물이다.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이 친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오만하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안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 불안감을 어떻게 힘으로 승화시키는 지가 아주 중요하다. 하고 싶은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향해 가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았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같이 하자는 말을 하면서 계기가 계기를 만들었다. 팝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면서 지금의 연주음악과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몇 만 명이 관객으로 오는 투어도 할 수 있었고. 하지만 역시 내가 끝까지 가고 싶은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간다면 마지막에 폭발하겠다, 위험하겠다고 미리 직감했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연주음악을 하고 싶어 했으니까 대중적인 음악을 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주니까. 다른 역할로서만 나를 알아왔으니까 갑자기 이 친구가 이런 음악을 어떻게 하겠어라는 반응들이었다. 나조차도 이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과연 갈 수 있을까 불안했다. 그때 나를 믿어준 사람들, 음반을 내게 해준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8년 제주도에 오면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때 느낌을 기억하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제주도 이야기를 맨날 들으면서 자라왔다. 비양도, 협재를 갔을 때 아 여기구나, 드디어 왔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제주도 중문에 갔을 때 ‘Prince of Jeju’를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것만은 음악을 쉽게 만든 경우다. 그 외에 꿈에서 음률이 나온 적이 딱 한 번 있다. 다시는 안 나온다. 딱 두 곡만 그랬고 참 신기했다.

한국 뮤지션 중에는 친한 이가 있나. 책 추천사를 써준 김창완이라든가.
아 김창완 씨는 술을 참 좋아한다. 같이 술을 마시면 죽는다.(웃음) 또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를 보면 언제나 여기까지 달려가시는 구나, 참 대단한 에너지다라고 놀란다. 지난 번 제주도에서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 사진기를 메고 제주도 산으로 들어가시는 거다. 그 때도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자극이 중요하다.

양방언이라는 이름 앞에 떠오르는 타이틀이란 게 있다. 크로스음악 뮤지션, 재일 한국인 음악가 같은 것들. 하지만 평소에 자신을 장르나 정체성에 있어서 정의되거나 구분지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의도된 것은 아니다. 옛날에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입니다”라고 들었을 때 “제가 뉴에이지 인가요”하고 반문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뭐 그대로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안에서 그런 구분은 없다. 나는 자극이나 영감을 많은 것으로부터 얻고 싶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부터 백 프로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내 안에서 매력을 느끼게 되면 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내 기본자세라고 할까.


자극이란 음악에 대한 자극을 말하나.

나는 많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싶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향해 문을 닫고 싶지 않다. 문을 닫고 있으면 좋은 것들이 지나가버린다. 스쳐지나가는 좋은 것을 자기가 잡을 수 있는 상태란 사람마다 다르다. 내 속이 닫혀 있으면 세상에 관심이 없어진다. 나한테 뭔가 줄 수 있고 그것이 재미가 있고 흥미가 가는 거면 들어간다. 그렇게 관심이 가는 것에 손을 뻗을 수 있는 상태, 그(상태를 유지한다는)건 솔직히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록이나 재즈, 클래식, 그림, 사람 아무 거라도 좋다. 뭔가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내 안에서 반응이 온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록페스티벌을 스스로 간다. 열린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게 좋다.

한국에서도 그랜드 민트 록페스티벌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록페스티벌은 양방언의 공연과는 관객층이 다르다. 어떤 차이가 있었나.
물론 전혀 다르다. 그래서 또 좋은 경험이 된다. 새롭고 진짜 즐거웠다. 연주를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장소란 정말 중요하다. 여우락페스티벌로도 야외공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페스티벌이라는 것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출연진의 다양성만이 아니고 듣는 사람들의 다양성도 있다. 관객들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페스티벌의 묘미다. 개인 공연은 일대일의 만남이지만, 페스티벌은 여러 무대에서 자신에게 맞는 공연을 선택하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우락페스티벌 라인업을 보고 일각에서는 이것을 한국의 전통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비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관객이 국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점에선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록페스티벌처럼 무대가 세 개, 다섯 개가 될 순 없겠지만. 앞으로 삼년동안 예술 감독을 맡는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나.
개인적인 비전 안에서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까도 말했듯 페스티벌은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게 중요한 거다. 여기에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없으면 선택을 안 하게 된다는 거다.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다양하게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면 가능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시작이다. 지금 많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정통국악, 퓨전 국악이라는 구분, 그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국악이란 뭔가, 이것만이 우리 음악이다라는 정의는 없다. 정의는 없지만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거다. 열심히 집중하기 시작하면 우리 음악이 나타나지 않을까. 음악을 듣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관객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건 티켓을 산다는 거다. 보통 페스티벌의 경우 데일리로 티켓팅을 하지만 지금 여우락페스티벌은 각 아티스트의 공연 당 티켓팅을 하고 있다. 이게 통합이 되면 관객에게는 접근성이 더 좋을 거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협의를 했으면 좋겠다. 일본 후지록이나 섬머소닉 페스티벌을 보면 많은 방법들이 있다. 메탈 페스티벌의 사이타마 아레나라는 무대가 있다. 무대 자체가 커서 무대를 반으로 나눈다. 그러면 한쪽에서는 연주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세팅을 한다. 아티스트는 무대를 이동할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공연들이 딱 시작되고 그렇게 이틀 삼일동안 진행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기술적으로나 어떤 부분에서든 지금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봐야겠다.(웃음)

가능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매시브 어택이나 펫숍보이즈 같은 공연을 보면 무대 장치가 어마어마하고 복잡하지만 시간 안에 세팅을 해낸다. 국악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면에선 우리도 헤드라이너가 있어야 한다. 그들을 보러 오는 것 자체가 계기가 되는 거다. 그들을 보러 와서 낮에는 돌아다니다가 의외의 음악을 만나기도 하고 이런 음악이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런 계기가 중요하다.  
만약 이번 여우락페스티벌도 데일리 패키지였다면, 이자람을 보러 왔다 국악 밴드 억스의 공연을 보고 그렇게 될 거 같다.(웃음)

여우락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잼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모든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이 무대 감독을 맡았다.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예술 감독이지만 무대에 직접 난입을 해도 좋겠다.(웃음)
무대에서 연주자들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물론 나도 즐기고 싶다. 그건 생.각.중(웃음) 잼콘서트는 페스티벌의 마무리지 않나. 마지막 순간까지 비밀이다.

국악 관객층이 점점 젊어지고 그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우락페스티벌에 와줬으면 하는 예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음악이라는 하나의 테마 안에서 열린 공간을 만들겠다. 이 열린 공간에서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많은 접점을 갖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라이브라는 것은 아티스트의 인간성까지 느낄 수 있는 거다. 역시 아티스트란 아우라라는 걸 갖고 있고, 그런 아티스트들이 모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다 혹은 이런 건 싫다라는 호불호와 상관없이 쌍방향의 의견을 많이 듣고 싶다. 우리들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그러면 반드시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다른 정의는 없다._씬플레이빌 7월호(http://www.scene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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