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키와 스니커즈로 무장한 현대판 동화 <비스틀리>

십 년 전 디즈니 애니보다 재미는 반감된  현대판 ‘미녀와 야수 ★☆☆☆☆
하위장르로 무시 당하는 스테파니 메이어 조차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

<비스틀리>는 21세기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현대판 ‘미녀와 야수’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라푼젤> <레드 라이딩 후드> 등이 몰고 온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할리우드 공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따랐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고전에서 콘셉트를 취한 <트와일라잇>식 할리퀸 로맨스에 더 가깝다. 이만하면 이 영화의 목표는 명징해진다. 트윈세대(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끼여 있는 중간 세대)용 로맨스 영화라는 것 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름다운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년 카일(알렉스 페티퍼)은 완벽한 외모와 인기를 양손에 거머쥐고 있다. 찬사를 보내는 친구들, 금발 미녀 여자친구, 인기의 척도인 학생회장 자리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카일에게 없는 것은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마녀 켄드라(메리-케이트 올슨)는 카일의 완벽한 미모를 그의 내면과 닮은 흉측한 괴물로 변신시킨다. 카일은 손목에 새겨진 문신에 꽃이 다시 피기 전까지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어야만 이 마법에서 풀려날 수 있다.

트윈세대의 문화 소구력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폭발적인 인기로 이미 입증됐다. 그리고 <비스틀리>는 이 인기를 쉽게 취한다. 고전 동화에 뿌리를 두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콘셉트는 <트와일라잇>과 동음이의어다. 연령대가 어린 트윈세대에게 맞춘 감질나는 로맨스는 스킨십을 최대한 자제하고 달달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소녀감성으로 무장했다. 마놀로 블라닉과 구찌 가방 대신 손으로 써내려간 편지를 선물하는 구닥다리 방식이 등장하고, 소년은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프랭크 오하라의 시를 읊는다. 다분히 여성을 위한 할리퀸 로맨스에서 농도 짙은 애정신을 쏙 뺀 나머지라고 보면 옳다. 이렇게 꿀을 바른 듯 달달한 십대 버전 ‘미녀와 야수’는 가벼운 소품과도 같다.

<비스틀리>는 캐스팅 면에서도 목표를 공고히 한다. <하이 스쿨 뮤지컬>로 트윈세대의 마돈나로 거듭난 바네사 허진스가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순간, 영화의 주 관객층은 확고해진다. 트윈세대의 지지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하이 스쿨 뮤지컬>이 춤과 노래로 점철된 단출한 이야기로도 사랑을 받았던 교훈을 토대로 한 모양인지, <비스틀리>는 갈등도 이야기도 ‘심플’을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하다.

배경은 현대의 뉴욕, 의상도 드레스 대신 후드 티와 스니커즈로 바뀌었지만, 영화가 걸어가는 방식은 진부하다. 고전동화의 재해석 혹은 전복이라는 콘셉트만 보면 MTV 방식의 재기발랄한 영상이 예상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나 감각적인 편집 방식은 <비스틀리>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주 메뉴인 로맨스 세공이 세심한 것도 아니다. 이렇다 할 위기 상황과 갈등 구조는 고전 미녀와 야수보다 약하고, 자연히 둘이 쌓아가는 연애의 감정도 스크린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비주얼이 막강한 청춘스타들과 익숙한 콘셉트만 밀어붙인다고 해서 틴 로맨스가 완성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재해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안이한 이 영화의 태도로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비스틀리>가 꿈꾼 <트와일라잇>의 영광은 인어공주의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쉬운 것이다. <비스틀리>에 대한 주 타겟 층인 트윈 세대들은? 대답은 개봉 주 박스오피스 3위로 돌아왔다. _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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