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평양> 홈 비디오로 마주한 평양의 측면

매스게임 대신 쇼팽과 미키 마우스로 기억되는 평양의 말간 얼굴 ★★★☆☆

<굿바이, 평양>은 홈 비디오 형식으로, 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딸의 생일, 가족들의 여행 등 한 가족의 대소사라는 일상이 카메라에 대한 이질감 없이 얼굴을 내민다. 이 다큐멘터리가 보통 홈 비디오와 극명한 차별화가 되는 지점은 재일교포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북한과 일본, 한국을 조망하자는 거창한 이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북으로 건너간 세 오빠와 조카들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찍어뒀던 13년의 기록은 이산가족 상봉 특집드라마보다 진실하다.

재일교포 3세대 양영희의 전작 <디어 평양>은 기술적 기교도 허심탄회한 눈물도 없이 담담했다. 이 목소리가 와 닿았던 이유는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숨 쉬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였다. 10년의 기록이었던 <디어 평양>에 3년이 보태진 <굿바이, 평양>은 세대가 바뀐 후일담이다. 전작이 조총련 열혈 간부였던 아버지와 젊은 2세대 상징 같은 감독 본인에게 집중한다면, <굿바이, 평양>은 오빠의 어린 막내 딸 선화라는 새로운 세대를 축으로 돌아간다.

북한의 허가 없이 촬영하고 공개된 전작과 비교해 정치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솔직한 입장을 내비치는 데 적극적인 순간이 존재한다. 어린이 예술단의 공연 ‘평양성의 소녀’는 20년 동안 변함이 없다. 공연을 볼 때마다 좋아하는 어머니와 달리 감독은 기분이 우울해진다고 소회한다. 아이들의 완벽한 공연은 언제 봐도 그로테스크하고 감독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복잡다단함을 내비친다.

<디어 평양>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저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단순하지만 당연한 진리였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괴리와 담담한 관찰은 극적인 장치 없이 이야기를 변화무쌍하게 만든다. 전작에서 정전으로 암흑이 된 방 한 켠에서 쇼팽을 연주하던 어린 소년은 짧은 순간 어떤 전율을 선사했다. 그 쇼팽의 피아노는 <굿바이, 평양>에서는 교정기를 한 선화의 얼굴로 대체된다. 절도 있는 매스 게임과 평양예술단 혹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북한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 등 단편적으로 각인되어 있던 북한은 훨씬 다채롭다.

제목에서 대구를 이루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진귀한 역사적 기록이 된다. 양영희 감독은 전작 상영 탓에 북한 입국이 금지되었고, 이 진귀한 기록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공개를 앞두고 말을 아끼던 감독의 말처럼 말해지는 것보다 말해지지 못한 여백을 더 많이 살피며 봐야 한다는 것은 옳다. _무비스트

뱀발.
1. <굿바이, 평양>의 원제는 <선화, 또 하나의 나>였다고 하네요. 전작과 똑 떨어지게 대구를 이루는 이름이 팬시하다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원제는 인간극장 톤이 너무 묻어났어요.

2. 다큐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를 박고 보기 좋게 '편집'한 기록물이기에 영화와는 다른 감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라는 부분에 관객들이 반응을 하는 거겠죠. <디어 평양>은 일본에 사는 조총련 간부의 딸이라는 희귀한 정체성을 가진 여자 감독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가족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에 태생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가 묘하게 걸쳐져 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평양 속 사람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피붙이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간 얼굴로 가감없이 웃고 말하는 평양 사람들을 보기란 쉽지 않죠.

3. 양영희 감독이 보여주는 평양 연작 시리즈는 제게 이렇게 기억됩니다. 쇼팽과 미키 마우스 그리고 교정기로 기억되는 평양 말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리랑'같은 노래만 부르고 들을 줄 알았던 선전화된 평양 속에서 난데 없이 쇼팽의 혁명이 흐르는 겁니다. 5분도 채 등장하지 않은 조카의 피아노 연주 장면은 난데 없는 충격이었죠. 그리고 <굿바이, 평양>에서는 초등학생 선화가 등교길에 미키 마우스 타이즈를 신고 있습니다.

가슴팍에 새겨진 헬로키티나 타이즈 발목의 미키마우스가 선화를 특별한 존재로 만듭니다. 북한과 대척점에 있는 미국, 그리고 허황된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할리우드 디즈니 대표 캐릭터 미키 마우스가 선화의 발목 위에서 평양 도심을 활보하는 거죠. 우리와 같은 걱정을 하는 고모의 말에 선화는 "애들은 아무도 몰라"라며 대수롭지 않게 속삭입니다. 그리고 이 모름과 다름을 인지하게 된 십대 선화는 북한 극장 앞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고모에게 이야기합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중요하니까 이야기를 해달라고 또 속삭이죠. 분명 찬양을 넘어서 배움을 쌓아가는 젊은 북한 사람들은 이런 앎의 딜레마에 빠지겠죠.

4. 전작을 보고 이런 비판을 하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집 안에 피아노가 있다니 부르주아가 아니냐-고 말이죠. 이에 감독은 그럼 우리 가족이 빈곤층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북한의 어떤 계층적 단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흥미로웠습니다.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를 즐겨 듣고 커피를 좋아했던 큰 오빠의 고뇌는 소수의 것이 아닐 테니까요. 북한에 사는 청소년들은 뭇 십대들이 통과하는 성장통에 국가와 개인이라는 가장 거대한 통증을 하나씩 더 안고 커나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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