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 맨> '코엔'적인 썰로 푸는 답 없는 방정식

                  

냉소적인 엇박자 유머 속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
근작 [번 애프터 리딩]의 숨가쁜 리듬감과 체온을 떨어뜨리고 ★★★☆☆
대중영화의 문법을 비껴가는 코엔아트 ★★★☆☆

방정식에는 답이 있기 마련이다. 과학은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모형을 하고 있어도 결국에는 한 점에 봉착한다. 하지만 삶이 어디 그러한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삶이 가진 유일한 미학일지도 모른다. [시리어스 맨]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위대한 형제 대신 [아리조나 유괴 사건]이나 근작 [번 애프터 리딩]의 컬트유머의 리듬감에서 흘러나온 야릇한 드라마다.

[시리어스 맨]은 정통 유대인 가족의 모형도를 래리 고프닉이라는 중년 가장을 중심으로 나열한다. 분명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조금씩 나사 빠진 인물들을 다루지만 전형성과는 한참 거리두기를 한다. 작달막한 키에 뿔테 안경, 유행과는 거리가 먼 밤색 정장 차림새의 유대인 주인공 래리 고프닉은 물리학 교수(마이클 스터버그)다. 미국 중서부의 소도시 미네아폴리스 교외 지역에 산다. 부인과 아들 딸이 있다. 이 정도면 미국 가정의 바람직한 척도쯤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가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

우선 의미심장한 오프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하나의 완연한 형태를 띤 프롤로그는 100여 년 전 눈 내리는 폴란드 마을을 비춘다. 남편은 집에 오는 길에 늙은 랍비를 초대한다. 아내는 그 랍비가 3년 전 죽었다고 말한다. 마침내 문제의 랍비는 집을 방문하고, 아내는 악령을 쫓아낸다며 랍비를 송곳으로 찌른다. 피가 번지는 가슴께를 너털웃음으로 바라보며 랍비는 문 밖을 나선다. 악령을 쫓아냈으니 남은 자들은 마음이 평안할 것인가. 눈이 나리는 바깥풍경 속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찬 바람은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남은 자들은 눈 앞에서 사고라도 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찰나의 암전 이후 곧바로 현대극으로 입장한다. 코엔 형제는 랍비가 유령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어둠 속에 남겨둔다. 영화는 이 모호한 프롤로그와 마찬가지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호한 상황은 본편에서도 무한 재생된다.

1967년 미국 소도시의 교외지역에 거점을 둔 영화는 한 유대인 가족의 가장이 봉착한 위기를 시니컬한 표정으로 쫓는다. 우선 불행의 전조는 병원에서 시작된다. 조용히 검사를 받은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상은 사정없이 함몰된다. 이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남자 래리 고프닉은 허우적댈 뿐이다. 그의 문제는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의 하소연은 문장 시작부분에서 가로막히기 일쑤다.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뭔가를 요구한다. 부인은 게트(이혼)을 요구하고, 아들은 지직거리는 채널 4번이 제대로 나오도록 안테나 수리만을 되풀이한다. 딸은 코 수술을 위해 아버지의 지갑을 털고, 사무실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레코드 할부금 독촉 전화가 그를 괴롭힌다. 또 한국인 수강생 박은 뇌물을 쥐어주며 학점 위기를 면하려는 협박을 일삼고, 이웃과는 정원 경계를 두고 소송까지 걸려 있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이 동시에 견딜 수 있는 곤란함의 한계를 넘어섰다.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 삐딱한 유머가 그만인 영화다. 물론 유머코드는 배꼽 잡는 카타르시스에 기인하지 않는다. 어떤 쪽이냐 하면 키들대는 유머의 자세 정도에 머무른 블랙 코미디다. 물론 코미디보다는 블랙을 굵게 표시해둬야 할 것 같다. 동조의 미학보다는 반 박자 늦은 혼자만의 웃음이 불편한 감성과 함께 동석한다. 이 영화의 삐딱한 블랙코미디는 곤란한 표정의 종합선물세트로 래리 고프닉을 연기하는 배우 마이클 스터버그에게서 기인한다. 국내 관객에게는 생경한 얼굴에서 풍겨나는 이미지가 그를 단순히 위기의 남자 정도로 희화화시키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장과 가족에 머무르던 물리학 교수 래리 고프닉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양자역학 공식을 칠판 가득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는 무엇 하나 수학의 공식처럼 명료하게 답이 떨어지는 것이 없다. 물리학 공식은 풀 수 있지만 정작 자기가 부닥친 현실 앞에서는 손 댈 엄두도 못 낸다.

래리 고프닉 뿐만이 아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엉뚱하고 정상궤도에서 15도 정도 벗어난 인물들이다. 모든 인물들의 오묘하게 이기적인 행태에서 코웃음이 나지만, 그 중에서도 이상한 매력을 자아내는 인물은 싸이 에이블맨이다. 절친이자 부인을 가로챈 이 남자는 헙수룩한 얼굴로 래리를 위로한답시고 조언가를 자처한다. 속물근성이나 약삭빠른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진심으로 뻔뻔하게 이해자가 되려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연민을 자아내는 루저 동생, 돈으로 사람을 낚는 한국인 부모 등등 1967년 래리 고프닉의 세계는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다. 이 엇박자 유머감각은 래리 고프닉이라는 우화적인 인물을 한층 상처로 휘감는다.

수많은 상황들이 하나의 화학식처럼 연쇄작용하고 무엇 하나 적확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리어스 맨]은 그렇게 텍스트 바깥에 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영화다. 아들이 방과후마다 매일 왜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가는지, 그의 워크맨에는 왜 20달러가 끼워져 있는지, 우여곡절 끝에 만난 랍비는 왜 헛소리만 늘어놓는지 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완전한 형태를 띤 프롤로그와 본편의 연계성마저도 일말의 실마리가 없다. 이 곤란한 드라마의 미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정답을 달아두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된다. 영화는 그래서 명확한 시대에 기반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한 편의 우화 같은 인상을 준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민으로 받아들여라'' 그래서 이 영화를 코미디라고 규정하면 오히려 미안해진다. 그러니까 [시리어스 맨]은 코믹한 우화의 탈을 쓴 섬뜩한 리얼리티에 위치시켜야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
Serious Manㅣ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ㅣ출연 마이클 스터버그, 리차드 카인드, 프레드 멜라메드, 사리 레닉, 에이미 렌덱커ㅣ제작년도 2009년ㅣ시간 105분

뱀발.
저는 [번 애프터 리딩]을 [시리어스 맨]보다 시리어스하게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두 영화 모두 연쇄작용이 기가 막힙니다. 전작이 배꼽을 잡는 방대한 소품으로 데굴데굴 구르게 한다면, 이번 영화는 반 박자 늦은 헛웃음과 조소 혹은 냉소가 주를 이룹니다. 저는 프롤로그와 엔딩장면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 그러고보면 요즈음은 코엔형제의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화적으로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웃으면서 보지만 즐기는 수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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