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하트> 시련의 초극점에서도 잃지 않는 평정심

퇴물인생의 근사하고도 요란하지 않은 재기성공스토리 ★★★+☆(별 반개)
생은 시련 후에 선물을 잊지 않는다 ★★★☆☆
[레슬러]의 미키 루크와 [크레이지 하트]의 제프 브리지스,
두 배우의 퇴물연기론을 비교하는 재미 ★★★★☆


성장의 시기란 세대를 막론한다. 3살 꼬마고, 여든 노인네고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인간이 이뤄내야 할 삶의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다. 그런 의미로 [크레이지 하트]를 성장드라마의 카테고리에 담아보려 한다. 줄거리의 한줄 요약은 이렇다. 한때 유명짜하던 컨트리가수가 나이 들고 허름한 모텔촌을 전전하다 결국은 재기하는 이야기. 온갖 줄거리 라인들 중에서도 퇴물인생의 드라마틱한 도약은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성공스토리이기도 하다. [크레이지 하트]는 이 성공스토리의 도식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지만, 자유로운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배우 자신마저 영화계에 귀환했던 미키 루크의 [레슬러]가 연상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런 얘기인 거다. 우리의 또 다른 퇴물은 링 위에 오르는 대신 볼링장 옆에 딸린 자그마한 무대 위에 오른다. 주인공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는 늘 술에 쩔어 힘겹게 기타를 치고 마이크를 부여잡는다. 땀에 흥건하게 젖은 셔츠와 벨트가 다 잡지 못하는 미련한 뱃살이 애처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정심은 거기까지다. 영화는 퇴물의 헙수룩한 생활을 보여줄 지언정 인물에 대한 애정과 존엄을 지킨다. 이 일관된 방식이 이 영화를 근사하게 만든다.

57살의 컨트리가수, 배드 블레이크. 땀으로 흥건한 셔츠와 풀어헤친 벨트, 카우보이모자, 선글라스까지. 별 볼일 없는 삼류인생의 종합선물세트를 걸치고 대면하는 그는 시작부터 좀처럼 품기 힘든 인성을 드러낸다. 한때 셀러브러티였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합주밴드를 무시하고, 볼링장이 딸린 보잘 것 없는 무대에서도 애정 없는 공연으로 밥벌이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옛 명성을 기억하는 올드 팬들에게 위스키정도는 얻어 마실 추억거리가 있다는 것 정도다.

한때 자신의 투어를 쫓아다녔던 꼬마는 지금 빅스타 토미 스윗(콜린 파렐)이 됐다. 배드는 오로지 돈 때문에 눈엣가시 같은 후배의 오프닝 무대에 선다. 마지막 자존심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심정으로. 여기서 배드 블레이크라는 캐릭터의 현실성이 합 겹 더 입혀진다. 지저분한 모텔방, TV에서는 온종일 돌아가는 성인 프로, 바닥을 뒹구는 위스키 병. 영화가 그에게 선사하는 삶의 선물이란 4살박이 아들 버디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진(매기 질렌홀)과의 만남이다. 지방지 기자출신인 진과 배드는 인터뷰 내내 식상한 질문을 주고 그마저 답변을 받지 못한다.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만남을 거듭하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영화에서 가장 달콤한 순간이다. "당신이 들어오니 이 곳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거 같소" 5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고루한 대사가 제프 브리지스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튀어나올 때 배드 블레이크가 처음으로 데면데면하지 않고 진심어린 목소리를 들려준다.

영화를 목도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57살 퇴물가수를 온 몸으로 말하려는 배우의 명연기가 아니라 진짜 실존하는 배드 블레이크라는 인물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인지도 모른다. 이 그윽한 분위기는 텁텁한 목소리로 불러주는 컨트리 음악, 그러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들 속에서 풍겨난다. 외신 중에 [원스]를 능가하는 음악과 연기를 언급한 걸 봤다. 연기는 물론 아마추어틱한 매력으로 어필하는 [원스]와 비교도 안되게 능가하고도 남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신작에게 힘을 실어주는 ''능가 한다''는 표현보다는 ''어깨를 견준다''고 말하고 싶다.

제프 브리지스의 배드 블레이크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만장일치로 합을 보고 있다. 토마스 콥의 원작 소설도, 데뷔작을 올리는 감독 스콧 쿠퍼도 아닌 나이든 한 남자 배우 제프 브리지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온전히 비춰지고 있다. 이 배우의 배드 블레이크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지나친 드라마와 동조를 부르는 부추기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재기이야기가 성립되려면 힘겹게 배신당하고 누군가가 떠나가고 처참하게 길바닥에 패대기쳐져야 한다. 그래야 이후의 성공이 한층 달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길로 간다. 주인공을 말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리는 드라마틱한 초극점을 보여주는 데 힘을 소진하지 않는다. 알콜 중독과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해 기타를 붙잡고 허밍하는 인물이 허세로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술은 진정 영혼의 허기에서 태어나므로. 감정의 바닥을 치고 자신이 말로 하던 명곡대신 진짜 명곡을 탄생시키는 배드 블레이크의 건강한 엔딩은 단란하다. 비록 재회한 여인과 키스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해도 그보다 더 인생에 가까운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Crazy Heartㅣ감독스콧 쿠퍼ㅣ출연 제프 브리지스, 매기 질렌홀, 로버트 듀발ㅣ제작년도 2009년ㅣ시간 112분

뱀발.
매기 질렌홀에게는 지금까지 필모 중 가장 매력적으로 여성성이 발현된다고 감히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에머랄드빛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는데, 우와 아름답습니다. [제리 맥과이어]의 르네 젤위거와 비견될 만큼 예쁜 애엄마입니다. 오스카 남우 트로피는 이변이 없다면 역시나 제프차지가 되겠지요. 그리고 영화를 보다보면 분명 주인공은 술을 끊고 있지만 정작 관객은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 싶게 합니다. 술을 넘기지 못하는 저같은 사람도요. 물론 슬퍼서이거나 감상에 젖어서가 아니라, 문득 위스키를 마셔야할 것 같은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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