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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바이 바이 히스 레저
 

당신이 히스 레저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했던 1人이라면 ★★★★☆
감독의 골수팬이거나, 팀 버튼이나 타셈 싱의 영상미를 좋아한다면 ★★★★☆
기승전결이 완벽해야한다는 원칙주의자라면 ★★☆☆☆

70년대 [몬티 파이톤의 성배], 80년대 [브라질], 90년대 [피셔 킹]과 [12 몽키즈]. 감독 테리 길리엄은 영화계에 다시 없을 괴짜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으로 영화광들을 흥분케했다. 그 열기가 무색하게도 그의 근작들은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최근작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은 그가 가진 힘이다. 여전히 판타스틱한 영상으로 옛 영광을 돌이켜보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감독 테리 길리엄의 놀랄 만한 상상력보다는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의 추억을 곱씹게 하는 히스 레저의 영화다. 그리고 유작이다.


단돈 5센트면 별천지를 볼 수 있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유랑극단은 오늘도 런던 변두리를 헤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은 파리가 날린다. 이동극장의 무대를 닫고 돌아서는 뒷켠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 미스터 닉(톰 웨이츠)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딸 발렌티나(릴리 콜)는 16세가 되면 악마 닉에게 바쳐질 운명이다. 닉은 딸의 생일까지 5명의 영혼을 구하면 자신과의 오래된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또다시 내기를 건다. 마침 다리를 지나던 이들 앞에 목 매단 청년 토니(히스 레저)가 나타나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 토니와 딸을 구하기 위한 유랑극단의 공연이 시작된다.

[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우선 용두사미같은 완성도를 가진 괴작이라는 점을 밝혀둬야겠다. 그 이유는 최근 힘을 못쓰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 탓도 제작비 부진 탓도 아닌 히스 레저의 부재 탓이다. 2008년 1월 22일, 느닷없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전세계가 당황했던 것처럼 한창 진행 중이던 테리 길리엄의 프로젝트는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포기하기보다는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살려 완성하기를 원했다. 마법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 순간 조니 뎁과 주드 로, 콜린 파렐이 히스 레저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되면서 이 상상극장이 무사히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히스 레저의 마지막 캐릭터 토니는 단순한 악역보다는 더 큰 의미가 있었을 듯하지만, 그의 부재와 함께 기괴한 캐릭터로 퇴장하게 된다. 이 이상한 완성도마저도 그의 부재로 인해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면 이 영화가 작품성과 별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과 느닷없이 고한 작별로 인해 영화의 완성도마저도 뒤틀려버린 히스 레저의 진짜 마지막 유작 [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부직포로 만든 것 같은 판타지와 아날로그적인 마법세계, 그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파우스트''적인 익숙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들의 참을성 없는 감각을 나무라듯 영화는 그 옛날의 상상력을 부추기면서 잊혀진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 중심에서 죽은 히스 레저가 다시 살아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목을 매달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등장부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타지와 죽음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와 기괴한 영상이 변화무쌍했던 그의 짧은 영화인생을 떠올리게 한 달까.

영화의 완성을 위해 손을 내민 조니 뎁과 주드 로, 콜린 파렐은 정면에 들어선 포스터에 비하면 카메오 수준으로 출연하지만, 먼저 떠난 동료의 작업을 끝마치기 위해 얼굴을 빌려줬다는 사실이 훈훈하게 다가온다.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에서야 진짜 마지막 유작을 만나게 된 것도 드라마틱하다. 불의의 사고로 영화는 그만 뭐라 평가하기 힘든 괴작이 됐지만, 故 히스 레저의 진짜 마지막 유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가 살아 움직이면서 화내고 웃음짓는 장면들이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게 와 닿는다.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ㅣ감독 테리 길리엄ㅣ출연 히스 레저, 크리스토퍼 플러머, 릴리 콜, 톰 웨이츠,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 앤드류 가필드



by analog | 2009/12/29 01:24 | 이창 | 트랙백
<판타스틱 Mr. 폭스> 먹물루저 웨스 앤더슨의 환상적인 인형놀이
 

현 세대 살아있는 먹물 루저의 대가 웨스 앤더슨이 보여주는 인형극이라니. 당최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할아버지 로알드 달의 원작 <멋진 여우씨>를 기반에 세우고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좀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완소무비가 될 것임은 예감상 알 만하다. 웨스 앤더슨과 로알드 달의 만남으로 탄생한 [판타스틱 Mr. 폭스]는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다.

여우시간으로 약 12년 전(인간 시간으로는 2년), 닭장 털기를 좋아하는 야생 여우 미스터 폭스(조지 클루니)와 미세스 폭스(메릴 스트립)가 시골 농장에서 신명나게 닭을 물고 나오던 찰나. 알면서도 건드려본 덫에 우스꽝스럽게 걸려든다. 타이밍도 얄궂게도 미세스 폭스는 미스터 폭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이 덫을 나가기만 한다면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이야" 그리고 지금은 여우시간으로 12년 후 현재, 폭스 부부와 아들 애쉬(제이슨 슈워츠먼)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지역 신문에 인기 칼럼을 연재하면서 단출한 굴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폭스는 여전히 가슴 속 야생의 본능을 잊지 못한다. 결국 친구 카일리(월레스 우로다스키)와 손을 잡고 언덕 위 으리으리한 농장주 보기스, 번스, 빈의 창고를 차례로 도둑질한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농장주 3인방은 폭스 굴을 파기 시작하고 폭스 가족과 더불어 숲 속 동물들까지 땅굴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위험에 빠진다. 급기야 사촌 크리스(에릭 앤더슨)가 빈의 손에 잡히면서 미스터 폭스는 골머리를 앓는다. 다 함께 크리스 구출작전 마스터 플랜 B를 가동한다.

[
판타스틱 Mr. 폭스]는 웨스 앤더슨이 임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이미 [스티븐 지소의 해저생활]에서 선보인 바 있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웨스 앤더슨표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짧은 러닝타임과 전격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실험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지만, 영화는 그의 전작들, [러쉬 모어]부터 [다즐링 주식회사]를 잇는 전형적인 웨스 앤더슨표 루저찬양 영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엉성하게 화합하는 가족영화다.

[
로얄 테넌바움]과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 그리고 [다즐링 주식회사]까지 줄기차게 웨스 앤더슨의 이야기 보따리가 되는 콩가루 가족과 말도 안 되는 형제애는 이번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나름 칼럼을 통해 지역 인사로 살아가는 미스터 폭스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아내의 말에 부족하다고 응답하는 여우다. 아들 애쉬는 아버지처럼 뛰어난 운동 선수가 되고 싶고, 잠시 들른 사촌 크리스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특별할 것 없는 소년 여우다. 그나마 가장 멀쩡해 보이는 현실주의자 미세스 폭스는 이성적이지만 꿈 꾸는 남편 폭스를 위로하지 못한다. 제각기 동상이몽하는 여우 가족이 이상한 사건 사고로 화합하는 엉뚱한 행복은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엄연한 범죄행각인 폭스의 창고 털이가 멋쩍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린이동화다운 발상 덕분이다. 유산계급 농장주와 가진 것 없는(거기다 인간도 아닌 동물)여우의 한판 승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이 대결에서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주인공 여우가족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무산 계급의 승리라는 거창한 주제를 댈 것도 없다. 이 엉뚱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봐왔던 인형놀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안성맞춤이다. [제임스의 거대한 복숭아]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헨리 셀릭과 만나고, 팀 버튼의 [찰리의 초콜렛 공장]으로 기괴한 상상력을 지폈던 원작자 로알드 달은 웨스 앤더슨의 손으로 거듭난 영화에도 꽤나 만족할 것 같다.
비록 이 인형놀이가 전체관람가일 지 언정 어른들도 즐길만한 블랙유머가 한 보따리라는 것도 단선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중요한 포인트다. 악질 농장주 3인방이 굴삭기로 숲을 다 파헤치는 바람에 부인이 햇빛 구경도 못한다는 항의에 ''넌 두더지라 원래 빛을 못 보잖아''라고 일갈하질 않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식사랑은 온데 간데 없고 아들 애쉬보다 사촌 크리스를 끼고 다니질 않나, 아버지 폭스의 모습들은 우스꽝스럽지만 인간적인 상황들을 빚어낸다.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아버지 폭스와 그 아버지 눈에 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들 애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로얄 테넌 바움] 혹은 각본가로 참여한 또 한 명의 먹물 루저 노아 바움백의 [오징어와 고래]의 부자(父子)들이 애니메이션 속으로 그대로 들어온 형국이다.

영화는 털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는 아날로그 인형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살아 움직이는 CG와 3D가 대세인 현재 손맛이 듬뿍 담겨진 스톱 모션은 웨스 앤더슨에게 어울리는 선택이다. 인형들의 질감도 아날로그지만, 일류 스타들이 총 출동한 녹음 과정도 아날로그 그대로였다고 한다.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모두 털복숭이 인형들일 뿐이지, 실제 녹음 과정은 극영화 찍듯이 돌아갔다고. 공장 씬에서는 공장으로, 굴을 파는 장면에서는 메릴 스트립과 조지 클루니가 삽을 들고 굴을 파면서 음성을 녹음했다니 뭐 말 다했다. 녹음 마저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진 좀처럼 화합하기 힘든 웨스 앤더슨표 가족애는 이렇게 완성됐다.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제이슨 슈워츠먼에 동생 에릭 앤더슨까지, 웨스 앤더슨의 패밀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좀처럼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일류스타들이 이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에 힘을 보탰다. 조지 클루니와 메릴 스트립, 월렘 대포 등 일류 스타들이 모두 목소리로 등장한 것. 여러 캐릭터들이 피식피식 웃음 짓게 하지만 누구보다 아들 애쉬가 눈에 밟힌다. 아버지 폭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못하는 운동에 집착하는 아이 애쉬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또래(혹은 그 이하)에게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코믹북에 심취해 망토를 두르고 양말로 만든 복면을 쓰고 다니는 애쉬는 아마도 감독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가 아닐까. 잘난 남들과 같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건 판타스틱한 일이야"라는 궁극의 대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유효한 인생 주제다.

어린 시절 꽤나 독특하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을 법한 웨스 앤더슨의 첫번째 애니메이션은 우아한 키치와 사랑스러운 이야기, 블랙유머로 버무려진 최고의 성탄 선물이 될 것 같다. 심지어 폭스 가족들로 대변되는 이 털복숭이 인형들은 어른인 나마저 가지고 놀고 싶어진다.

Tip.
악당 빈이 그런 노래 따위 절대 부르지 말라고 무안 주는 조역 중의 조역 피티는 사실 영국 밴드 ‘펄프’의 보컬 자비스 코커가 맡았다. 실제 자비스 코커를 쏙 빼 닮은 인형에게 노래가 형편없다고 나무라는 조크는 ''심슨''스러운 유머를 빚어낸다.

-인형들을 자랑(?)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의 모습. 손가락이 길고 가늘다.(응?)
-미스터 폭스(조지 클루니 분)의 이빨을 색칠하는 모습인가. 인형이 얼마나 앙증맞게 작은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형 세트장에서 잠자는 설정(?) 중인 빌 머레이씨. 처진 볼 살이 귀엽다.
<하단 사진 출처-IMDB>
Fantastic Mr. Foxㅣ감독웨스 앤더슨 ㅣ출연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제이슨 슈워츠먼, 월렘 데포, 마이클 갬본,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에릭 앤더슨, 애드리언 브로디




by analog | 2009/12/25 01:28 | 이창 | 트랙백
<셜록 홈즈> 212번째 셜록 홈즈는 100년 전 CSI오락물
 

1887년생 셜록 홈즈는 약 120동안 영화로만 211번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진 인기 캐릭터다. 천재적인 두뇌, 쉽게 풀기 어려운 트릭, 이성과 감성이 여전히 혼재하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과학과 이성적인 두뇌로 단서를 짜맞추는 셜록 홈즈는 그만큼 근대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신기한 것은 한 세기 전 소설 속 인물이 꾸준히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 만점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루팡, 어린 시절 집 책장에 한 편 쯤은 꼭 꽂혀 있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소년탐정 김전일, 셜록 홈즈를 현대 미국 병원에 부활시킨 하우스까지. 여전히 유효한 셜록 홈즈열풍에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의 가이 리치가 합류했다.

헝클어진 머리, 햇빛과 담쌓은 약물중독자, 지저분한 행색이지만 런던 경찰이 풀지 못하는 사건 앞에서 가장 먼저 찾는 이가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다.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비밀결사 조직의 잇따른 살인 사건으로 홈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왓슨(주드 로)이 출동한다. 현장에서 조직의 주술자 블랙우드(마크 스트롱)경을 잡고 대대적인 사형을 집행하지만, 그가 묘지에서 부활하면서 홈즈는 보다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다. 희생자는 날로 늘어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강한 친구 왓슨이 결혼과 함께 딴 살림을 차린다고 한다. 혼란스러운 홈즈에게 첫사랑 여인 아이린 애들러(레이첼 맥아담스)까지 가세한다.

원작이 있는 본판에 가이 리치는 덧칠을 멋들어지게 했다. 우선 변주가 성공적이다. 가이 리치만의
셜록 홈즈는 원퍼치 쓰리 강냉이도 낼 줄 아는 주먹의 소유자다. 물론 홈즈 캐릭터는 무술도 탁월한 인물이지만, 그의 특성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외골수적인 면이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가이 리치는 이성에 의존하는 괴팍한 지성인에서 액션 오락물에 합일하는 시대극 영웅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오락액션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조력자 왓슨은 홈즈의 추리력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서 칼을 쓸 줄 아는 군인 출신의 핸섬한 런던 신사로 옷을 바꿔 입었다.

시커먼 두 남자가 주인공인 대중오락물에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빠질 수는 없다. 가이 리치는 방대한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로맨스 라인을 지폈던 캐릭터 아이린 애들러를 모험 사이에 배치했다. 아이린은 두 남자의 드라마에 양념으로만 기능하지 않고, 선과 악 사이에서 능동적으로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현한다. 무엇보다 등장하면서부터 속편을 위한 카드를 쥐고 마지막까지 미스테리를 몰고 가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속편 제작을 위해서도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인물로 거듭났다.

이렇게 가이 리치의 2009년판 [셜록 홈즈]는 최근 홈즈를 미국 대학 병원으로 모셔와 제대로 변주한 하우스박사 이후 유명한 오락물이 될 것 같다. 훌륭한 캐릭터가 시대극에 몸을 담그고 오락성 100점짜리 액션 블록버스터로 거듭난 것이다. 해결 없이 사건에 사건이 거듭하지만, 명쾌한 추리는 가이 리치다운 플래식 백으로 마지막을 수놓는다. 수 초 만에 사건의 실마리를 짜맞추는 스피디한 영상은 마치 천재적인 홈즈의 머릿속에서 한 순간에 퍼즐이 짜맞춰지는 순간을 대신 보고 있는 듯하다. 간간이 펀치 볼 클럽이나 수사 과정에서 홈즈가 날리는 왕 펀치 액션들에서 재현되는 감각적인 영상들도 신명 난다.

쉽게 간과하게 되는 사건 현장의 지문과 발자국, 먼지, 쓰레기더미 등으로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의 수사방식은 19세기의 CSI 과학수사물인 셈이다. 이번 시리즈물은 개봉도 하기 전에 속편 모리아티 교수 역에 브래드 피트 출연설이라는 떡밥까지 던지면서 속편 제작까지 200% 쾌속 질주할 것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스타일리시한 영상에 캐릭터의 맛을 극대화화한 [셜록 홈즈]는 2009년을 마무리하는 오락영화로서의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Sherlock Holmesㅣ감독 가이 리치ㅣ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레이첼 맥아담스



by analog | 2009/12/24 16:24 | 이창 | 트랙백(1)
<전우치> 이야기도 CG도 난조, 강동원만 호조
 

제작초기부터 캐스팅, 소재, CG, 제작비, 감독 등등 온갖 화제를 양산했던 [전우치]가 드디어 나타났다. 올해 [해운대]와 [국가대표]가 일군 한국영화 흥행가도에 마지막 승전고를 올리겠다는 각오로. 감독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범죄장르영화를 한국식 코미디로 둔갑시키고, [타짜]로 포커가 아닌 화투판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한국식 장르오락을 유려한 연출로 녹여냈다. [전우치]는 그가 성공해왔던 스타일과 더불어 아예 소재부터 ''전우치전''이라는 고전소설에 적을 두고 한국식 토종 오락 블록버스터의 야심을 꾼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홍길동전보다 조금 덜 유명한 고전소설
전우치전이 모티브다. 하라는 수행은 안하고 과부 보쌈을 하질 않나, 임금을 놀려먹질 않나, 도 닦는 것보다 입신양명에 더 눈을 켜고 다니는 악동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500년 전 조선시대 평양에서 활약하던 시기다.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 손에 넘어가면서 시대가 어지러워지고, 세 명의 신선은 고매한 도사 화담(김윤석)에게 만파식적 회수를 부탁한다. 하지만 화담은 피리를 손에 쥐자 절대반지마냥 숨겨진 욕망이 눈을 뜬다. 화담은 피리를 차지하기 위해 천관대사(백윤식)를 죽이고 전우치에게 누명을 씌워 족자에 봉인한다. 그리고 500년 후 2009년 서울, 다시 날뛰는 요괴 퇴치를 위해 신선들은 전우치를 깨운다.

지금까지 감독 최동훈의 승부율은 100%였다. 데뷔작 [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가 연출력과 오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최동훈은 단 두 편으로 승부사가 됐다. [전우치]는 승부사 최동훈이 판돈을 크게 걸고 덤비는 빅 버직 영화다. 몸집이 비대해지고 판도 커진 이 영화는 아무래도 감독이 운용하기에는 오케스트라급 이었던 것 같다. [전우치]는 규모로 봐서는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야 하지만, 간혹 하모니가 맞는 아카펠라를 들려준다.
단 두 편의 영화로 흥행감독 반열에 오른 최동훈의 장점을 꼽자면 꼭 나와야 하는 것이 있다. 맛깔 난 대사와 그 대사가 빚어내는 잔재미, 원색적으로 분명한 캐릭터 색깔이다. [
전우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해진의 초랭이와 도사 전우치가 벌이는 티격태격 버디 코미디와 세 신선의 감초연기, 그리고 자뻑 여배우의 푼수 짓까지, [오션스]시리즈에 버금가는 화려한 등장인물들이 분량에 구애 받지 않고 캐릭터 색깔 내기에 성공한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단연 완성도 있게 뽑아내는 캐릭터는 주인공 전우치다. 얼굴이 예뻐 연기력에 논란이 있거나 정작 잘해도 연기력이 묻히는 타고난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강동원은 [전우치]에서 악동 도사라는 캐릭터에 높은 싱크로율로 날고 뛴다. 영화의 재미가 보장되는 20%의 이유는 바로 캐릭터들에 있다.

하지만 [
전우치]가 놓치는 부분은 그 외의 모든 것이다. 우선 최대의 난제는 리듬감의 부재다. 코미디의 관건이 타이밍이라면, 오락영화 [전우치]는 리듬감을 상실하면서 80% 더 선사할 수 있는 재미를 잃어버린다. 감독이 심어놓은 코미디는 여느 때와 달리 컨디션 난조로 불발하는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전작과 다름 없는 말장난이 켜켜이 쌓여있지만 중구난방이거나 핀트와 타이밍의 문제로 웃음 유발에 실패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이야기와 CG의 자연스러운 조화부분이다. 요괴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에서 CG문제를 걸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요괴 구현 장면은 소재자체가 판타지라는 점에서 [아바타]의 자연스러움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초반부 과거 조선시대 시퀀스에서는 요괴 CG와 그림 같은 도술 장면의 접합이 제법 유려하다. 추억의 만화 ''머털도사와 백팔요괴''를 떠올리기도 하는 등 만화적인 장치가 한 몫 하는 셈이다. 하지만 시제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실사에 와이어액션으로 갈아탄 액션 장면은 긴장감 제로, 박진감 제로에 설상가상으로 어색한 CG가 작렬한다. 특히 크라이막스 부분인
전우치와 화담의 접전에서 벌어지는 벽을 타는 부분과 폭발 장면 등은 최근 본 한국영화 CG장면 중 눈에 띄게 허술하다.
[
전우치]는 아쉬운 CG구현과 낮은 성공률의 말장난, 그리고 이야기의 유기력이 실종되면서 처음 꿨던 큰 꿈에 못 미치는 대중영화가 됐다. 지적할 부분이 많은 영화지만 신기하게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쉬운 것은 승부사 최동훈의 승률이 100%에서 70%로 하락했다는 점 정도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주인공 강동원은 캐릭터 색깔 내기에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충무로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을 줄 만하다.

감독 최동훈ㅣ출연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백윤식, 염정아, 송영창, 주진모, 김상호




by analog | 2009/12/23 03:29 | 이창 | 트랙백 | 덧글(4)
<아바타> 신세기를 여는 3D영화의 카메론식 화답

감독이란 영화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조물주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장르라는 틀 안에서 소멸하고 탄생하는데, 어떤 감독들은 말 그대로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톨킨의 대서사시를 영상으로 형상화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포스’라는 새로운 섭리를 구축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그런 경우다. [터미네이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을 만들어낸 제임스 카메론도 자기만의 우주를 탄생시키고픈 숙원을 오랫동안 꿈꿨나 보다. [스타워즈]가 조지 루카스식 우주 대서사시라면, [아바타]는 그에 대한 카메론식 화답이다. 판도라에 적을 둔 소우주의 탄생인 셈이다.

해병대원 출신 용병 제이크 설리(샘 워딩튼)는 판도라라는 미지의 행성으로 향한다. 인간과 나비 족의 DNA를 결합한 생명체
아바타를 조종하기 위해서다. 과학자로 판도라 행성 탐사에 참여하던 형이 죽고, DNA가 동일한 쌍둥이 동생 제이크가 형의 아바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는다. 전쟁에서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제이크는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에게는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 나비족의 중개자로 행성의 정보를 전하고,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에게는 새로운 다리를 약속 받고 판도라 행성의 기밀을 전한다.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 족장의 딸 네이티리(조 샐다나)에게 나비족으로서 생활하는 법을 배우면서 현실의 제이크 설리와 나비족으로서의 아바타사이에서 방황한다. 제이크의 방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판도라 행성 파괴 계획은 막 가동된다.

2154년, 지구로부터 4.4광년이 떨어져 있는 이 미지의 행성은 물론 환상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실사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생명력으로 넘치는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체는 압도적으로 날뛴다. 표범과 사냥견의 형상을 한 태나토어, 익룡을 닮은 이크란, 지구식 말에 해당하는 다이어호스, 밤이면 형광으로 빛나는 식물 등 판도라라는 미지의 행성은 영화를 즐기게 하는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인간의 반대편에 서 있는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 나비들은 이모션 캡처를 이용한 CG 기술을 통해 더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활개친다. 카메론의 우주창조 욕망은 압도적인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카메론은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했던 언어 창조라는 작업을 재가동했다. [
아바타]에서도 나비족 만의 언어를 잉태하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는다.

카메론은 이 3D오락영화에 서구 식민지의식과 고도의 테크놀로지 비판을 담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인디언을 사냥하던 서부 개척시대 대량 학살과 베트남전 혹은 숱한 식민전쟁의 얼룩진 인간 역사가 판도라라는 가상의 우주 안에서 반복되는 식이다. 인간은 아무리 죄를 되풀이해도 모자람이 없다는 서글픈 진실. 영화는 탐욕을 인간을 타자화하면서 실현시키고 있다. 인간과 토착민의 관계를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주인공과 함께 역전시키는 방식은 익숙하지만 제법 근사한 의미심장함을 부여한다.

주인공이 타자가 되면서 순식간에 인간이 타자가 되는 역지사지는 굳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올해 개봉했던 [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과 인간의 역할 바꾸기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한치도 예상에서 어긋남이 없다. 특히 암전 하나로 백인남자 제이크 설리를 나비족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토루크 막토로 변환시키는 급전개는 너무 쉽게 해결책을 강구한다. 단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이 화려한 물량 공세에 비해 가볍게 완성된다. 영화 속 판도라는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하지만, 스토리 텔링 면에서는 신비스럽거나 웅장하지 않다.

판도라에서 제이크 설리는 이미 주둔하고 있는 인간들 무리에서도 나비족 사이에서도 이방인이다. 이방인에게 이름불리기는 자기 존재 확인에 가장 중요한 증거다. 제이크 설리는 당연히 쉽사리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그레이스 박사에게는 ''머리 빈'' 마린으로, 네이티리에게는 절대 나비족 답게 말하고 생각할 줄 모를 ''바보''로 일축된다. 그가 나비족과 소통하는 유일한 존재로, 그리고 이크란을 조종하면서 나비족으로 인정받으면서 마침내 제이크로 불리는 것은 첫 번째 이름 찾기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전설 ''토루크 막토''라는 이름을 획득하면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결국 진정한 나비족으로서 제이크 설리라는 본명을 다시금 부여 받는 일련의 과정이 [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식 스토리 텔링인 셈이다.

제이크 설리라는 이름 찾기 모험담은 시각적인 쾌감과 익숙한 비판정신으로 액션과 SF, 로맨스, 어드벤처를 모두 해낸다. 혀를 내두를 만한 스펙타클에 못 미치는 스토리 텔링이 아쉽다면 아쉽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5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 추정에 상응할 만한 오락영화로서의 볼거리 제공은 확실히 굳히기를 한다는 것이다.
Avatarㅣ감독 제임스 카메론ㅣ출연 샘 워딩튼,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by analog | 2009/12/23 02:49 | 이창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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