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외교관, 가난한 이민자이자 프랑스 군인, 고다르의 여인으로 각인된 여배우 진 세버그의 남편이자 스캔들 메이커. 이중 하나만도 한 인생에 담기 어렵다. 하지만 한 작가의 삶 속에서 수렴된다. 영광과 갈채의 단상 위에서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이 개척자를 비밀의 대가라 부르겠다.
작가와 드라마는 동의어다. 이야기를 직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소설가들의 인생에서 드라마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무릎팍 도사>에서 풀어놓은 황석영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소설가의 전형이었다)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글을 쓰는 작가일수록 삶에는 그보다 더한 재료가 난무할 것이라 손쉽게 생각한다. 여기에 그 표본이 있다. 로맹 가리, 아니 에밀 아자르라고 읽어야할 남자.
로맹 가리는 애잔하고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단편모음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는 평생 생부를 알지 못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자랐다. 러시아인도, 리투아니아인도, 폴란드인도, 프랑스인은 더더욱 아닌 가난한 이민자 출신 소년은 명예욕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힌다. 변신을 향한 욕구는 이때부터 자리잡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대표 지성이 된 그는 20세기 프랑스 이민자들에게는 자수성가의 상징이다. 성공의 원동력에는 환상에 가까운 지적 허영과 욕망이 있었다. 변변찮은 연극배우 출신이었던 어머니에게 아들은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의 보증수표였다. 극심한 가난과 멸시 속에서도 아들이 언제나 깔끔한 옷을 입고 점심에는 비프 스테이크를 먹을 것을 원했다.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 <새벽의 약속>에는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쓰기보다는 필명을 짓는데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소년이 등장한다. 모자는 괴테,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등 대문호에 어울리는 이름들은 이미 모두 존재한다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는 우습기보다 처량하다.
이름을 통해 십년 이십년 후에 이룰까 말까한 꿈을 미리 맛보는 것. 허구적인 삶은 이미 그의 어린 시절부터 자리한다. 로맹 가리라는 첫 번째 이름은 전쟁터에서 태어난다. '태워버리라'는 러시아어 'Gary'를 'Gari'로 변형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로맹 가리는 작가 지망생에서 레옹 도뇌르 훈장을 가슴에 단 프랑스 시민이 된다. 그리고 필명을 짓기에 바빴던 소년은 마침내 꿈을 이룬다. <유럽의 교육>을 시작으로 어엿한 작가의 길에 올랐고 평단의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외교관 업무와 글짓기를 병행했던 로맹 가리는 은둔형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의 교묘하고도 환상적인 언변은 완벽한 퍼포머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이 구절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서 불행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익살을 떨어야했던 요조가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자신을 감추는 연기를 거듭할수록 괴리라는 틈바구니로 공허가 들어차기 마련이다. 화려한 데뷔가 무색하도록 잇따른 실패는 고질적인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인 예술가 자서전 속 '성공과 고난' 필수 챕터쯤으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비밀'이라는 단어를 생애를 통해 연기한 진짜 희극인 로맹 가리, 아니 에밀 아자르의 삶은 지금부터다. 로맹 가리가 <이 선 너머에서 당신의 티켓은 유효하지 않습니다>라는 소설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작가로서 사형 선고를 받던 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얼굴 없는 작가가 <그로칼랭>이라는 작품으로 홀연히 나타난다. 노련한 문체를 구사하는 이 신인에게 문단과 대중은 갈채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작품을 발표한 로맹 가리는 신예 에밀 아자르와 비교선상에 놓이며 가혹한 혹평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한 집요한 독자로 인해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의 조카로 판명되면서 로맹가리가 재능 있는 조카의 문체를 표절했다는 비난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사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였다. 온 세상을 상대로 거대한 게임을 시작한 이 남자의 능청스러움은 유쾌할 정도다. <자기 앞의 생>이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 공쿠르상을 수상했을 당시 한 기자는 물었다. "이번 공쿠르상 수상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맹 가리는 이렇게 답한다. "<그로 칼랭>은 괜찮게 읽었지만, <자기 앞의 생>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소"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작가가 되었지만 무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이유가 단지 넘치는 유머감각 때문일까. <자기 앞의 생>을 향한 폭발적인 반응은 <유럽의 교육>이 발간되던 당시 쏟아지던 찬사와 묘하게 닮아있다. 이십년 전 받았던 갈채를 숨겨진 신인작가가 되어 다시 받아본 로맹 가리는 과연 웃었을까, 쓴 웃음을 지었을까.
에밀 아자르 외에도 그는 포스코 시니발디, 샤탄 보가트라는 이름으로도 작품을 발표했다. 밝혀지지 않은 필명이 더 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이 웃지 못 할 이중생활은 생을 향한 농담이자 처절한 투쟁이다. 익숙한 명성으로 인해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 대중과 평단에게서 선입견을 거둬내는 것. 그에게 유일한 무기이자 삶의 목적인 글을 짓기 위해 가공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로맹 가리가 권총자살로 비극적인 최후를 선택하고 6개월이 지나고서야 이 영화 같은 삶은 엔딩 크레딧을 올릴 수 있었다. 프랑스 문학계는 문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다. 작가가 일생에 단 한번만 수상할 수 있는 공쿠르상을 로맹 가리에게 <하늘의 뿌리>로 한번,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수여한 것이다. 일명 '아자르 사건'으로 명명되는 이 시나리오는 대흥행이었다. 뒤늦게 외면과 멸시, 인간 혐오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로맹 가리를 애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죽인 것은 편견이었다.
주인공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발각된 몰래 카메라는 성공적이지만 씁쓸하다. 생을 던진 순간 드러난 진실은 비극적인 코미디다. 세계적 지성이라 할 만한 문단을 기만하고 그 허위와 무능력을 온 몸으로 비판한 로맹가리, 이 소설가는 그 자체가 드라마이자 최고의 연기자였다. "들키지 않는 것, 그것은 위대한 예술이다" 그가 말 했듯 자신의 삶마저 하나의 마스터피스로 승화시켰다. 인생이라는 스크린은 이미 피날레를 장식했지만 암전 후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뒤늦게 극장을 찾은 독자라는 관객들은 여전히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으로 자신을 세우기도 하지만 이름 뒤에 숨기도 한다. 내 것이지만 전적으로 타인이 사용하는 소유물, 이름. 그 이름의 신화에 사로잡힌 소설 속 대표인물들이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나를 조제라 불러줘
'나를 조제라 불러줘'. 영화로 더 유명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원작은 일본의 여류작가 타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이다. 출간 후 약 이십년이 지난 후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애를 테마로 쓴 이 오래된 소설집에서 '조제'를 이끌어내 영화로 숨을 불어넣었다. 조제는 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가 읽고 있는 프랑스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한달 후 일년 후> 속 주인공 이름이다. 작은 옷장 안을 거처로 삼은 여자는 반백년 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조제를 꿈꾼다. 여기보다 어딘가를 꿈꾸는 이에게 이름을 바꾸는 건 가장 빠른 판타지다.
<빅 픽처> 다른 삶을 꿈꾸다
남자의 삶은 전 세계 자본주의의 첨탑 뉴욕 월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꿈은 서부의 광활한 그랜드캐년 어딘가에 있다. 삶에 치여 사진가의 꿈을 포기했다고 위로하면서 비싼 사진장비를 구입하는 것이 그의 취미다. 어느 날 아내의 불륜이 발각되자 네모반듯했던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 영화 같은 소설(이미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은 잘 짜여진 한 편의 범죄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범죄드라마에서 이름을 바꾸는 건 가장 빠른 위장방법이다. 이름을 바꾸고 삶도 바꾸고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 온갖 드라마틱한 전개를 스피디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이것 또한 거대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소설 속 주인공 남자는 로맹 가리와 닮아 있다. 남의 이름을 훔치고서 '미국의 풍경을 가장 잘 담아내는 사진가'로 일약 떠올른다. 하지만 다시 이름을 바꾸자 무명이 되어버린다. 사진은 그대로이지만 세상은 검증된 유명세와 이름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돌아가는 필름처럼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간다.
<위대한 개츠비> 오, 사랑
빈농 출신 제임스 개츠는 제이 개츠비로 이름을 바꾼다. 일명 재즈 시대라 불리던 1920년대 미국의 풍요 속에서 사랑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 미국 물질문명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간 사나이의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는 청춘소설로 손꼽히지만 가장 잔인하면서도 낭만적인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스스로 개츠비라 자신을 명명한 청년은 밀수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출신 성분을 바꾸고 신흥 상류층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허영으로 치장한 상류층 아가씨 데이지가 사는 그 곳에 마침내 입성한다. 사랑을 매개로 미국 사회의 시대적 단면을 통렬히 집도한 이 소설은 21세기 한국만화 <위대한 캐츠비>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신분상승의 욕구, 머저리 같은 청춘, 맹목적인 사랑은 동서고금 언제나 통한다. '진정으로 인생이 시작되던 바로 그 순간에 제이 개츠비로 이름으로 바꾼' 청년의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b-side_필명은 나의 힘
필명이란 작가들이 누릴 수 있는 유희다. 이차원적인 종이 위에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구축하는(심지어 제작비는 종이와 연필이면 된다)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로맨스나 단편을 펴낼 때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을 즐겨 썼다.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은 심리 스릴러작가 '리처드 바크만'으로 활동하다 한 끈질긴 독자를 통해 밝혀졌다. 영국의 범죄소설가 존 크리시는 필명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28개의 필명으로 600여권의 장편소설을 발간했으니 이 정도 호칭이 아깝지 않다. 서부 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등 장르별로 애용하는 필명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양적으로는 로맨스 소설가 바바라 카틀랜드를 이길 자가 없다. 결혼 후 이름인 '바바라 '맥코쿼데일'과 '마커스 벨프레이'라는 이름으로 723편의 소설과 비소설을 발간했다. _월간 씬플레이빌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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