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대치중이다. 근엄한 표정을 한 검열관과 초조하게 대본을 부여잡고 있는 작가다. 때는 1940년 장소는 보안과 어느 검열관의 사무실이다. 시대적 암울함은 연극판에도 깃들어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극단 <웃음의 대학> 작가 츠바키는 새로 부임한 검열관 사키사카에게 선처를 부탁하기 위해 ‘타코야키’까지 사들고 왔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공연불가다. 도무지 웃을 수 없다는 이유다. 연극과는 평생 담 쌓고 살았다는 검열관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저속한 희극"이라며 이왕이면 "애국심이나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햄릿>같은 작품을 써 달라"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들고 간 대본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는데 말이다. 연극 <웃음의 대학>은 작가와 검열관이라는 권력의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보내는 7일을 쫓는다. 같은 장소, 단 두 명의 배우, 달력이 넘어가는 것을 빼고는 구분 짓기 어려운 비슷한 날의 연속이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방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결국 <햄릿과 줄리엣>이 된 이상야릇한 극본에는 검열관의 거듭된 수정 요구로 "천황, 폐하, 만세"라는 세 마리의 말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카무라라는 이름의 순경도 등장한다. 애초에 불가능했던 수정 요구를 작가는 지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받아들여 희극적 요소로 녹인다. 그의 열정에 감복한 검열관 또한 어느 순간부터 넌지시 의견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후 견고한 성벽에 일어난 작은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검열관이 독자, 작가, 그리고 급기야 배우가 되어 대본을 맞추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평생 단 한 번도 크게 웃어본 적 없다는 남자를 정확히 여든 세 번이나 웃게 만드는 완벽한 희극이 탄생한다.
연극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더 우쵸우텐 호텔>, <매직 아워> 등 작가 미타니 코키 작품의 전매특허 코미디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웃음이 값진 이유는 포복절도 뒤에 남는 진한 페이소스 때문이다. <웃음의 대학>은 미타니 코키가 40년대 희극 왕이라 불렸던 선배작가에 대한 헌사로 탄생했다. 실재했던 선배작가는 혹독한 검열의 상황 속에서도 희극의 전성기를 이끌며 끝까지 펜을 꺾지 않다가 35살에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숨을 거뒀다.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숨겨진 결말을 몰라도 우리는 징집봉투를 들고 씩씩하게 문을 나서는 작가의 등 뒤에서 눈물을 훔치게 된다. 애국심 고취를 외치던 검열관조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생각 따위 하지도 말라"고 당부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을 본다. 웃음을 검열하는 극적 설정이 단지 희극을 위한 소재로만 보이지 않는 시대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웃음이란 혁명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권력을 상징하는 검열관이 거짓말처럼 변했듯이 웃음은 사람을 움직이고 사회를 흔든다._guest editor_양현주 공연월간 씬플레이빌(www.sceneclub.com) 1월호
공연기간: 2013.11.8.-2014.2.23
공연시간: 화-금 20:00 토 15:00 18:00 일·공휴일 14:00 17:00
공연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원 작: 미타니 코키
연 출: 김낙형
출 연: 송영창 서현철 조재윤 김승대 정태우 류덕환
제 작: (주)연극열전 (주)적도
티 켓: R석 4만5천원 S석 3만5천원
문 의: 02.766.6007(연극열전)
INFORMATION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일본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현실을 희극적으로 뽑아냈다. 지칠 줄 모르는 집념으로 웃음을 사수했던 희극작가 츠바키 하지메는 당시 실존했던 전설적인 희극 왕 에모토 켄이치를 모델로 삼은 인물이다. 그가 만든 극단 엔켄은 정부의 혹독한 검열을 뚫고 일본 희극 전성기를 이뤘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공연되지 못하고 검열관의 서랍 속에서 잠든 완벽한 희극 정신은 반백년 후 <웃음의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이번 무대는 2008년 초연의 분위기로 다시 되돌아가겠다는 김낙형 연출의 의지가 묻어난다. 매 시즌 빠짐없이 서슬 퍼런 검열관을 연기했던 배우 송영창과 함께 미타니 코키의 <너와 함께라면> 초연을 이끌었던 대학로 ‘희극지왕’ 서현철, 그리고 드라마 <추적자>, <구가의서> 등에 출연한 조재윤이 새롭게 합류했다. 집념의 작가로는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김승대와 연극 <에쿠우스>에 더블 캐스팅됐던 정태우, 류덕환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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